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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8. 메시아의 구원과 ‘남은 자’
유승필
2009. 6. 12. 10:20
- 제 8 강
- 메시아의 구원과 ‘남은 자’
- (미가 4:9-5:9)
- Ⅰ 들어가는 말
- 첫 번째 ‘남은 자’ 본문(2:12-13)은 ‘남은 자’가 하나님의 은혜로 구성되었음을 보여 주었다.
- 이스라엘의 죄악은 '미가'로 하여금 벌거벗고, 들개와 타조처럼 부르짖게 만들었지만, 하나님은 은혜를 베풀어 ‘남은 자’를 보스라의 양떼처럼 보호하시고, 친히 그 ‘남은 자’의 앞잡이가 되심으로써 ‘남은 자’는 하나님의 은혜로 구성됨을 나타내었다.
- 두 번째 ‘남은 자’ 본문(4:6-8)에서는 ‘남은 자’에 대한 정의를 내리고 있음이 발견된다.
- 즉 “하나님의 은혜를 입은 ‘남은 자’ 그들은 누구인가?”에 대한 내용이었다. 그들은 각계의 지도자들에 의해 핍박을 받아 다리를 절며, 땅에서 쫓겨난 자들이다. 한편 이들은 참다운 통치자를 갈망한 자들이기도 했다.
- 세 번째 ‘남은 자’ 본문(5:7-9)은 두 가지의 특징이 나타나는데,
- 그 첫째는 ‘남은 자’를 회복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이 부각된다는 점이다.
- 둘째는 ‘남은 자’는 메시아와 더불어 “승리하는 ‘남은 자’”로 등장한다는 특징이 보인다.
- Ⅱ 남은 자 사상의 배경 (4:9-5:2a)
- 지금까지 살펴본 ‘미가’의 ‘남은 자’ 본문이 그러하였듯, 세 번째 ‘남은 자’ 본문에서도 역시 “심판-구속”(‘심판’과 그에 따르는 ‘구속’)의 구조가 반복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 미 4:9 “이제 네가 어찌하여 부르짖느냐 너희 중에 왕이 없어졌고 네 모사가 죽었으므로 네가 해산하는 여인처럼 고통함이냐”
- 심판으로 인해 부르짖는 이스라엘의 모습을 풍자하는 표현이다. 회개하지 않는 이스라엘은 결국 심판을 받았다. 왕도 정치인도 모두 심판을 받았다. 이로써 이스라엘에는 질서가 사라져버렸다.
- 그러나 곧 이어서 구원의 메시지가 들린다.
- 미 4:10 “딸 시온이여 해산하는 여인처럼 애써 구로하여 낳을지어다 이제 네가 성읍에서 나가서 들에 거하며 또 바벨론까지 이르러 거기서 구원을 얻으리니 여호와께서 거기서 너를 너의 원수들의 손에서 속량하여 내시리라”
- 심판으로 인해 바벨론까지 끌려간 이스라엘을 야웨께서 속량하신다는 약속이다.
- 심판과 구속의 구조가 다시 나타난다.
- 미 4:11-12 “11.이제 많은 이방이 모여서 너를 쳐 이르기를 시온이 더럽게 되며 그것을 우리 눈으로 바라보기를 원하노라 하거니와 12.그들이 여호와의 뜻을 알지 못하며 그 모략을 깨닫지 못한 것이라 여호와께서 곡식단을 타작 마당에 모음같이 그들을 모으셨나니”
- 다시 심판의 선포가 나타난다. 야웨의 뜻을 알지 못하는 이스라엘은 결국 자신들의 자랑으로 여기던 시온을 적의 말발굽에 짓밟히고 말았다. 민족의 수치이다.
- 그러나 곧 이어서 구원의 메시지를 들려준다.
- 미 4:13 “딸 시온이여 일어나서 칠지어다 내가 네 뿔을 철 같게 하며 네 굽을 놋 같게 하리니 네가 여러 백성을 쳐서 깨뜨릴 것이라 내가 그들의 탈취물을 구별하여 여호와께 드리며 그들의 재물을 온 땅의 대주재께 돌리리라”
- 야웨께서는 이스라엘의 뿔을 철과 같게 하신다. 강하게 하신다. 대적들을 물리칠만한 능력 있는 뿔이 되게 하신다.
- 심판과 구속의 구조가 세 번째 나타난다.
- 미 5:1 “딸 군대여 너는 떼를 모을지어다 그들이 우리를 에워쌌으니 막대기로 이스라엘 재판자의 뺨을 치리로다”
- 대적들이 이스라엘을 포위하고, 이스라엘의 귀족들과 왕족들을 희롱한다. 심판의 처절함이다.
- 그러나 곧 이어 구속의 메시지가 들린다.
- 미 5:2 “베들레헴 에브라다야 너는 유다 족속 중에 작을지라도 이스라엘을 다스릴 자가 네게서 내게로 나올 것이라 그의 근본은 상고에, 태초에니라”
- 이스라엘을 다스릴 자가 유다 땅에서 나온다. 이는 이방인의 통치로부터의 해방을 의미한다.
- 이상에서 살펴보는 바와 같이 심판-구속의 구조는 반복적으로 나타나는데, 이 반복되는 구조 속에서도 그 구속의 이야기는 점진성을 가지고 있음이 드러났다.
- 4:10은 죄악으로 인해 심판을 받아야할 이스라엘을 속량하시는 하나님이 나타나고,
- 4:13에서는 속량받은 백성들이 강한 능력을 받아 대적을 물리치게 하시는 하나님,
- 5:2에서는 완전한 구속으로 말미암아 이방의 통치를 청산하게 하시는 하나님의 역사가 점진적으로 나타남을 알 수 있다.
- Ⅲ 메시아의 출현과 ‘남은 자’ (2b-6)
- 1. 메시아의 출현 (2)
- 미 5:2 “베들레헴 에브라다야 너는 유다 족속 중에 작을지라도 이스라엘을 다스릴 자가 네게서 내게로 나올 것이라 그의 근본은 상고에, 태초에니라”
- 여기에는 ‘남은 자’의 관점에서뿐만 아니라, 성경 전체에서 매우 중요한 사상이 나타난다. 바로 ‘메시아 사상’이다.
- ‘마태’는 이 본문을 인용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을 증거하였다.
- 마 2:6 “또 유대 땅 베들레헴아 너는 유대 고을 중에 가장 작지 아니하도다 네게서 한 다스리는 자가 나와서 내 백성 이스라엘의 목자가 되리라 하였음이니이다”
- “베들레헴 에브라다야” -
- ‘베들레헴’은 유다 땅에 위치한 작은 마을로써 “떡집”이란 뜻이다.
- ‘에브라다’는 ‘베들레헴’의 옛 이름이다. 여호수아 19:15에 의하면 스블론 땅에도 ‘베들레헴’이란 지명이 있었다. 여기서 베들레헴을 옛 이름까지 소개하는 것으로 보아, ‘미가’가 소개하려고 하는 베들레헴은 유다 땅의 ‘베들레헴’임을 나타내려는 의도가 보인다. 이는 이스라엘을 다스릴 자가 이방인이 아닌, 유대인 중에 나타날 것임과, 그 유대인은 “‘다윗’의 자손”이 될 것임을 선포하고 있는 것이다.
- ‘미가’는 회개하지 않은 죄악으로 인해 바벨론의 포로가 된 이스라엘이 이방인의 통치로 고난을 받을 것임을 예고하였고, 그러나 은혜로우신 하나님에 의해 참된 통치자가 등장하여 이스라엘을 치리 할 것을 예고한다. 가깝게는 ‘스룹바벨’, ‘에스라’. 느헤미야‘ 등으로 볼 수 있으나, 결국 그들도 메시아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한 인물이라는 점을 생각할 때, 본 계시가 지목하는 최종적인 인물은 예수 그리스도이다.
- “그는 상고에 태초에니라”는 표현에서 이스라엘을 다스릴 참 통치자는 ‘스룹바벨’이나, ‘에스라’ 혹은 ‘느헤미아’라기 보다는 결국 성육신 하신 예수 그리스도임을 더욱 분명해진다.
- 결론적으로 ‘미가’는 ‘남은 자’를 통치하실 통치자는 결국 예수 그리스도임을 자연스럽게 선포하고 있는 것이다.
- 2. 메시아의 평화로운 통치 (4-6)
- 새로운 통치자로 등장한 메시아에 대하여 보다 상세한 정보가 제공된다.
- 미 5:4 “그가 여호와의 능력과 그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의 위엄을 의지하고 서서 그 떼에게 먹여서 그들로 안연히 거하게 할 것이라 이제 그가 창대하여 땅 끝까지 미치리라”
- “그가 여호와의 능력과 그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의 위엄을 의지하고” - 이는 메시아의 통치권의 출처가 여호와임을 의미한다. 메시아는 하늘에서 뚝 떨어져 이스라엘을 다스리겠다고 나선 통치자가 아니다. 그는 이스라엘을 창조하시고, 이스라엘을 가나안으로 인도하셨고, 바벨론에서도 보호하고 계신 바로 그 야웨의 이름으로, 야웨의 권능으로 통치하신다. 즉 그의 통치는 야웨의 통치이다. 예수님은 자신이 바로 그 야웨와 동일한 권능과 동일한 은혜를 가진 분임을 나타낸다.
- 요 14:9 “예수께서 가라사대 빌립아 내가 이렇게 오래 너희와 함께 있으되 네가 나를 알지 못하느냐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거늘 어찌하여 아버지를 보이라 하느냐”
- “그가 창대하여 땅 끝까지 미치리라” - 하나님의 능력과 이름으로 통치하시는 메시아의 통치의 범위는 예루살렘으로 제한되지 않는다. 예루살렘은 그의 통치의 시발점 일뿐이다. 그의 통치는 땅 끝까지 미친다. 모든 세상이 메시아의 통치를 받게 될 것이다. 이는 ‘미가’의 구원관이 민족적인 구원관이 아니라, 우주적인 구원관임을 알 수 있다. 바로 이러한 미가의 사상이 ‘남은 자’가 이스라엘 민족적 차원의 ‘남은 자’가 아니라, 우주적인 ‘남은 자’라는 사실을 뒷받침한다.
- 미 5:5a “이 사람은 우리의 평강이 될 것이라 …"
- 메시아는 우리의 평강이다. 지금까지 평화를 잃었던 이스라엘은 메시아의 통치로 인해 평화를 맛보게 될 것이다. 이 평화는 흔들리는 평화가 아니다. 변함없는 평화이다. 이 평화는 지금까지 맛보지 못했던 평화이다. 하나님만이 줄 수 있는 평화이다.
- 요 14:27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
- 주님이 주시는 평화는 깨어질 것을 염려하지 않아도 된다. 대적들의 침략을 두려워하지 않아도 된다. 주님이 주시는 평화는 세상의 평화와 다르다. 영원하며, 완벽하다. 사자와 곰이 만나도 싸우지 않는 평화이다. 고양이와 개가 만나도 싸우지 않는다. 이것이 메시아의 통치로 말미암는 평화이다. 메시아는 바로 이 평화로 통치하신다.
- 미 5:5-6 “5.이 사람은 우리의 평강이 될 것이라 앗수르 사람이 우리 땅에 들어와서 우리 궁들을 밟을 때에는 우리가 일곱 목자와 여덟 군왕을 일으켜 그를 치리니 6.그들이 칼로 앗수르 땅을 황무케 하며 니므롯 땅의 어귀를 황무케 하리라 앗수르 사람이 우리 땅에 들어와서 우리 지경을 밟을 때에는 그가 우리를 그에게서 건져내리라”
- 메시아의 평화의 통치의 비결은 대적들을 멸하는데 있다. 지금까지 불안을 조장했던 대적들, 환난을 생산하던 무리들을 멸하심으로써 그 통치권에 있는 자들에게 평화를 주신다.
- 대적과의 싸움에서 승리를 얻고 그 승리를 통해 진정한 평화를 주는 메시아이시다.
- 3. 메시아와 함께 등장하는 ‘남은 자’ (3)
- 메시아의 통치를 선포하는 미가는 그 통치를 받게 될 ‘남은 자’에 대해 언급한다. 여기서 ‘남은 자’ 사상을 찾을 수 있다.
- 미 5:3 “그러므로 임산한 여인이 해산하기까지 그들을 붙여 두시겠고 그 후에는 그 형제 남은 자가 이스라엘 자손에게로 돌아오리니”
- 메시아의 통치를 받기 위해 시온으로 돌아오는 ‘남은 자’는 일정한 기간 동안 붙잡혀 있다. 고난의 날을 보낸 자들이다. 수치를 아는 자들이다. 즉 자신의 죄를 뉘우치고, 자신의 죄를 미워하는 자들이다. 그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통치를 받는다.
- Ⅳ ‘남은 자’ 사상 (7-9)
- 세 번째 ‘남은 자’ 본문에 나타난 사상을 알아보자!
- 미 5:7-9 “7.야곱의 남은 자는 많은 백성 중에 있으리니 그들은 여호와에게로서 내리는 이슬 같고 풀 위에 내리는 단비 같아서 사람을 기다리지 아니하며 인생을 기다리지 아니할 것이며 8.야곱의 남은 자는 열국 중과 여러 백성 중에 있으리니 그들은 수풀의 짐승 중의 사자 같고 양 떼 중의 젊은 사자 같아서 만일 지나간 즉 밟고 찢으리니 능히 구원할 자가 없을 것이라 9.네 손이 네 대적 위에 들려서 네 모든 원수를 진멸하기를 바라노라”
- 세 번째 ‘남은 자’ 본문인 5:7-9은 ‘남은 자’에 대하여 일정한 구조를 가지고 나타난다. (p. 59)
- A ‘남은 자’의 위치 : 많은 백성 중에(7a),
- 열국 중에(8aa),
- 여러 백성 중에(8a).
- B ‘남은 자’의 역할 : 이슬과 단비의 역할(7b),
- 사자와 젊은 사자의 역할(8b).
- C ‘남은 자’의 역할의 결과 : 승리(9)
- 이상과 같은 구조를 중시하며 ‘남은 자’ 사상을 발견하자
- 1. ‘남은 자’의 위치 (7a, 8a) (※p. 59 함께 읽자)
- “야곱의 남은 자는 많은 백성 중에 있으리니” (7a)
- (םי םי ב ב תי ה)
- “야곱의 남은 자는 열국 중과 여러 백성 중에 있으리니” (8a)
- (םי םי ב םוֹגּ ב תי ה)
- “많은 백성 중에” (םי םי ב, 브콜레 아밈 라빔)는 7절과 8절에서 반복된다.
- 본래 ם(암)이 단수로 사용될 때 그것은 이방 백성과 구별해서 하나님의 택한 백성을 가리켰다. 그러나 복수의 경우는 달라진다. ‘많은 백성’(םי םי, 아밈 라빔)은 이방의 많은 사람들을 가리킨다. 결과적으로 이 언약은 ‘뭇 백성들’ 가운데 흩어져 사는 ‘야곱의 남은 자’에 해당한다.
- 특별히 야곱의 ‘남은 자’라는 명칭은 과거 족장들과 선지자들의 축복을 상속하게 될 ‘남은 자’라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으며, 동시에 고통과 희망의 두 가지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 명칭이다. 심판이 일어났으나 야곱은 자신을 선택하신 여호와의 ‘남은 자’이므로 ‘많은 백성’(םי םי, 아밈 라빔) 가운데 포함되어 있으나 결코 멸절되지 않을 것이다.
- ‘남은 자’는 예루살렘에 모여있지 않다. 그들은 이미 그들의 죄로 인해 세계 각처로 흩어졌다. 그들은 이방인들 가운데 섞여서 구별되지 않아 보인다. 그러나 하나님의 구속사에서는 분명히 구별이 된다. 이처럼 성도는 이미 택함을 입은 하나님의 백성이지만, 성도가 살아갈 곳은 이 세상이다. 결코 성도들만 따로 모여서 살고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세상이 죄악으로 물들어 멸망한다할지라도 성도는 멸망하지 않는다. 하나님의 구속사의 시각은 성도와 비성도를 분명히 구별하기 때문이다. ‘남은 자’는 세상 속에 있다. 우주적으로 흩어진 상태이다. 마지막 때에 모으실 것이다.
- 2. ‘남은 자’의 역할 (7b, 8b)
- ‘많은 백성’ 가운데 있는 ‘야곱의 남은 자’의 역할은 매우 큰 의미를 가진다.
- “그들은 여호와에게로서 내리는 이슬 같고” (הה ת ל)
- “풀 위에 내리는 단비 같아서” (ב־י םייכּ)
- “그들은 수풀의 짐승 중의 사자 같고” (ר תוֹמ האַ)
- “양떼 중의 젊은 사자 같아서” (ןא־י רי)
- “이슬(ל, 팔)과 단비(םיי, 르비빔)” -
- ‘이슬’과 ‘단비’는 하나님의 축복을 가리키는 말로서 사람을 소생케 하고 윤택케 함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말이다.
- 신 32:2 “나의 교훈은 내리는 비요 나의 말은 맺히는 이슬이요 연한 풀 위에 가는 비요 채소 위에 단비로다”
- 이슬과 단비는 모든 채소에게 없어서는 안될 소중한 생명의 근원이다. 이 이슬과 단비로 인해 생물들은 생동감을 얻게 되며, 또한 열매를 맺게 된다.
- 온 세상에 흩어진 “야곱의 남은 자”는 바로 이와 같이 모든 민족들에게 ‘이슬’과 ‘단비’의 역할을 한다. 그들로 인해 온 세상의 백성들이 살맛이 난다. 그들로 인해 희망을 가진다.
- 마 5:13-16 “13.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 소금이 만일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 후에는 아무 쓸데없어 다만 밖에 버리워 사람에게 밟힐 14.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산 위에 있는 동네가 숨기우지 못할 것이요 15.사람이 등불을 켜서 말 아래 두지 아니하고 등경 위에 두나니 이러므로 집안 모든 사람에게 비취느니라 16.이같이 너희 빛을 사람 앞에 비취게 하여 저희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
- ‘남은 자’는 비록 포로가 되었을지라도, ‘이슬’과 ‘단비’이다. 성도는 비록 세상에 속하여 세상과 더불어 살고 있지만, ‘소금’이며, ‘빛’이다.
- “‘사자’(האַ, lion)와 ‘젊은 사자’(רי, young lion)” -
- ‘남은 자’가 수풀의 짐승중의 사자 같고 양떼 중의 젊은 사자와 같다는 말은 “야곱의 ‘남은 자”’가 모든 열방을 통치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 ‘미가’ 당시에 이집트의 통치자나 앗수르의 왕들이 사자로 비유되었고, 메소포타미아의 성전이나 궁전들에서 사자의 장식이 인기리에 사용되었음을 고려할 때 ‘미가’는 ‘남은 자’를 사자에 비유함으로서 이들에 맞서는 강한 ‘남은 자’를 강조하고 있는 것 같다.
- 계 5:5 “장로 중에 하나가 내게 말하되 울지 말라 유대 지파의 사자 다윗의 뿌리가 이기었으니 이 책과 그 일곱 인을 떼시리라 하더라”
- 사도 ‘요한’은 “그리스도는 어린양이 되시지만 유다 지파의 사자이시기도 하다”고 전한다.
- 메시아와 함께 등장하는 ‘남은 자’는 메시아처럼 강하다. ‘어린양’이지만 ‘사자’인 메시아처럼, ‘이슬’이지만 ‘사자’이신 메시아처럼 강하다.
- 3. ‘남은 자’의 역할의 결과 (9)
- 이러한 이중적인 역할을 하는 ‘남은 자’의 결과는 무엇인가?
- “네 손이 네 대적 위에 들려서” (י־ל ם)
- “네 원수를 진멸하기를 바라노라” (וּת י־ל)
- “승리하는 남은 자”이다.
- 메시아가 양처럼 유약하나, 사자처럼 강하여서 대적을 이기고 평화로써 통치하듯,
- ‘남은 자’는 이슬과 단비처럼 부드러우나, 사자처럼 강하여 대적을 물리치고 시온으로 올라가 메시아의 통치를 받는다.
- Ⅴ 요약 (P. 63 함께)
- 첫 번째 ‘남은 자’ 본문은 하나님의 은혜에 의한 ‘남은 자’ 사상을 담고 있으며, 그 하나님의 은혜는 언약에 근거하고 있었다.
- 두 번째 ‘남은 자’ 본문은 그 ‘남은 자’를 정의하였다. ‘남은 자’는 ‘저는 자’로서 상처를 입은 양들과도 같았다. 하나님은 그들을 모으시고 직접 통치하심으로 사악한 통치자들에게 상처 입은 ‘남은 자’를 위로하신다.
- 세 번째 ‘남은 자’ 본문은 앞선 두 본문에 등장하는 예언의 성취가 어떻게 이루어질 것인지에 대하여 전하고 있다. 즉 메시아의 도래와 통치, 그리고 메시아를 닮은 ‘남은 자’들의 승리로 요약될 수 있다.
- 두 번째 ‘남은 자’ 본문을 통해 다윗의 권능과 왕권을 회복하여 강한 나라가 될 것이라는 약속이 성취되어 임박한 심판 가운데서도 승리할 수 있을 것이라는 소망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그러므로 이 본문의 ‘남은 자’는 “승리하는 ‘남은 자’”라 할 수 있다.
- 과거의 희생자이며 피해자였던 ‘남은 자’가 이제 승리자가 될 것이며, 강한 ‘남은 자’가 될 것이다.
- 따라서 세 번째 ‘남은 자’ 본문은 회복하시는 하나님이 부각되고 있으며, 특별히 강한 나라가 되게 하시겠다는 두 번째 본문의 약속이 젊은 사자와 같은 승리하는 ‘남은 자’를 실재로 성취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출처 : 임금택 창고
글쓴이 : 임금택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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