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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11. 미가의 평화사상1
유승필
2009. 6. 12. 10:21
- 제 11 강
- 미가의 평화사상1 (미가 4:1-13)
- 들어가는 말 : 샬롬의 일반적 정의 - 평화는 야훼로부터 오는 것이다 -
- “샬롬”(ם)은 구약에서 가장 널리 사용되는 용어이다. ‘샬롬’만큼 구약에서 널리 사용하는 용어는 흔치 않다.
- “샬롬”(ם)은 동시에 그 개념에 있어서는 일반 용어의 수준을 훨씬 뛰어 넘는다. ‘샬롬’은 많은 의미를 농축하고 있다.
- 첫째, “샬롬”이라는 말의 어근은 물질적 측면을 강조하는 성격을 띤 “복지” 또는 “안녕”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예를 들면,
- “신체의 건강”(렘6:14; 사57:18; 시33:3),
- “편안한 여행”(창26:29; 출18:23),
- “편안히 잠을 자는 것”(시4:8),
- “맹수나 외적의 위협이 없어서 두려움이 없는 것”(레26:6; 겔34:28),
- “때에 알맞게 비가 내려 농사가 잘되는 것”(겔34:23),
- “번영을 누리는 것”(신23:7),
- “전쟁이 없는 것”(왕상2:5),
- “정한 수대로 살다가 죽는 것”(창15:15)
- 모두 “샬롬”이 담고 있는 의미이며, 이는 모두 “땅의 평화”(샬롬 바아레츠)이다.
- 둘째, “샬롬”은 “상태개념”으로 보다는 “관계개념”을 의미한다는 점이다.
- 상태개념이라 하면, 그저 존재하는 것, 그저 그 자리에 있는 것을 의미한다.
- 관계개념이라 하면, 어떤 관계를 통해서 형성되는 것을 의미한다.
- 그러므로 평화가 상태개념이 아닌, 관계개념이라는 말은 평화는 그저 그렇게 거기에 있는 그 어떤 상태가 아니라, “만들어지는 것”이라는 말이다.
- 예컨데, “건강”이라는 것은 육체의 각 기관 사이의 건전한 조화와 통일을 통해서 이루어진다.
- “전쟁”이 없는 것도 전쟁의 요소가 제거됨으로써 비로소 만들어지는 것이다.
- “농사”가 잘 되는 것도 하나님께서 제 때에 비를 주셔야 잘 되는 것이다.
- “국가적 평화”도 역시 저절로 되는 것이 아니다, 평화조약이 체결되어야 한다.
- 하나님과 이스라엘 사이의 평화도 역시 같은 이치이다. 하나님과 이스라엘 사이의 평화는 저절로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 이스라엘 사이의 평화 계약이 있어야 한다.
- 겔 34:25 “내가 또 그들과 화평의 언약을 세우고 악한 짐승을 그 땅에서 그치게 하리니 그들이 빈 들에 평안히 거하며 수풀 가운데서 잘지라”
- 이스라엘은 하나님과의 평화의 계약으로 인해 평안히 거할 수 있다. 이스라엘의 평화는 그저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성도의 평안도 그러하다. 성도의 평안도 그리스도의 새언약의 피로 인하여 그 언약의 피와 관련된 자들에게 있게 된다.
- ex) ‘기드온’의 “야웨 샬롬” (삿 6:23-24)
- 삿 6:23-24 “23.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너는 안심하라 두려워 말라 죽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24.기드온이 여호와를 위하여 거기서 단을 쌓고 이름을 여호와살롬이라 하였더라 그것이 오늘까지 아비에셀 사람에게 속한 오브라에 있더라”
- 이스라엘이 미디안의 괴롭힘을 받을 때, 하나님은 ‘기드온’을 찾아오셨다. 이때 ‘기드온’은 “이제 죽었구나”라고 생각을 했다. 하나님을 보는 것은 곧 죽음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안심하라, 두려워 말라, 죽지 아니하리라”고 말씀하신다. 이것은 새로운 관계의 성립을 의미한다. 전에는 만나면 죽는 관계였으나, 하나님의 말씀으로 인해 죽지 않는 관계가 된 것이다. 이것이 “샬롬”이다. 그래서 ‘기드온’은 그 곳을 “여호와 샬롬”이라고 불렀다. “평화를 여호와로부터 보장을 받았다”는 의미이다. 또한 “평화의 근원은 곧 야훼다”라는 고백이기도 하다.
- “야훼 샬롬”은 “야훼는 샬롬이다”, 혹은 “야훼는 샬롬을 창조하신다”라는 뜻으로 해석된다. 즉 “평화의 근원은 야훼다”라는 의미이다.
- 정리를 하자면, 평화는 자연히 생기는 상태적 개념이 아니라, 관계적 개념이다.
- 즉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를 통해 받는 선물이다. 재언하자면, 평화의 근원은 하나님이시다.
- 미가서 4장은 구약의 평화이해가 가장 석명하게 정리되어 있으면서도 그러나 “샬롬”이라는 용어는 단 한번도 나타나지 특이한 본문이다. 그 구조는 3부로 나뉘어 진다.
- 제 1 부(4:1- 5) “평화이데올로기”가 종말론적 사상 속에서 정리되었다.
- 제 2 부(4:6- 8) 종말론적으로 이루어질 “평화의 현실”을 요약했다.
- 제 3 부(4:9-13) 그러한 평화의 현실이 “어떻게 실현될 것인가”를 묘사한다.
- 몸말1 ‘미가’의 역동적 평화이데올로기 (4:1-5)
- 미 4:1-5
- “1.말일에 이르러는 여호와의 전의 산이 산들의 꼭대기에 굳게 서며 작은 산들 위에 뛰어나고 민족들이 그리로 몰려갈 것이라 2.곧 많은 이방이 가며 이르기를 오라 우리가 여호와의 산에 올라가서 야곱의 하나님의 전에 이르자 그가 그 도로 우리에게 가르치실 것이라 우리가 그 길로 행하리라 하리니 이는 율법이 시온에서부터 나올 것이요 여호와의 말씀이 예루살렘에서부터 나올 것임이라
- 3.그가 많은 민족 중에 심판하시며 먼 곳 강한 이방을 판결하시리니 무리가 그 칼을 쳐서 보습을 만들고 창을 쳐서 낫을 만들 것이며 이 나라와 저 나라가 다시는 칼을 들고 서로 치지 아니하며 다시는 전쟁을 연습하지 아니하고
- 4.각 사람이 자기 포도나무 아래와 자기 무화과나무 아래 앉을 것이라 그들을 두렵게 할 자가 없으리니 이는 만군의 여호와의 입이 이같이 말씀하셨음이니라
- 5.만민이 각각 자기의 신의 이름을 빙자하여 행하되 오직 우리는 우리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빙자하여 영원히 행하리로다”
- 본문의 내용은 “말일에”라는 종말론적 어투로 시작하는 구원론적 선포이며, 구성은 다음과 같다.
- 서론 : 야훼 통치의 출현을 선포함(1-2)
- 본론 : 1)군사적 차원의 평화사상(3)
- 2)사회.경제적 차원의 평화사상(4)
- 3)종교적 차원의 평화사상(5)
- 결론 : 회중의 응답(5)
- 이러한 구성내용 중에서 서론과 결론이 차지하는 신학적 의의는 매우 크다. 평화이념을 설정함에 있어서 본문은 그 서론에서 우선 야훼의 유일한 신정통치권을 먼저 선포하고 그 신정정치가 “시온에서” 행해질 것과 그리고 세계 열국이 이 야훼의 신정통치를 받음으로 문자 그대로 “우주적 평화의 신기원”이 열리게 될 것이라는 선포를 한다. 그리고 그에 대한 응답으로써 모든 백성들이 하나님의 선포가 지극히 합당하다고 동의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 의미가 크다고 말할 수 있다.
- 1-1. 서론 : 야훼통치의 출현을 선포함 (1-2)
- 미 4:1-2 “1.말일에 이르러는 여호와의 전의 산이 산들의 꼭대기에 굳게 서며 작은 산들 위에 뛰어나고 민족들이 그리로 몰려갈 것이라 2.곧 많은 이방이 가며 이르기를 오라 우리가 여호와의 산에 올라가서 야곱의 하나님의 전에 이르자 그가 그 도로 우리에게 가르치실 것이라 우리가 그 길로 행하리라 하리니 이는 율법이 시온에서부터 나올 것이요 여호와의 말씀이 예루살렘에서부터 나올 것임이라”
- 여기에 나타나는 “시온신학”은 세계통치의 중심은 어디까지나 예루살렘 즉 시온이 되고, 야훼께서 이 시온에서 신정통치를 펴실 때, 바로 그 시온으로부터 평화에 관한 야훼의 가르침(율법&말씀)이 흘러나와 모든 세계가 다 함께 그 가르침(평화에 대한)을 듣고 복종하게 될 것이라는 것을 말한다.
- 이는 평화의 근원이 도대체 어디에 있는지를 밝히고자 하는데 목적을 둔 말씀이다.
- 즉 평화는 어디까지나 야훼의 거주지인 시온으로부터만 나온다는 것, 좀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야훼의 가르침과 말씀으로부터만 평화가 나온다는 것을 증거하는데 목적이 있다고 하겠다.
- 그러므로 이에 따르면, 평화에 대한 갈망은 하나님 나라의 도래에 대한 기대로부터 분리되고서는 희망으로 존속할 수 없다고 하겠다.
- 1-2. 본론 1) 군사적 차원의 평화사상 (3)
- 이러한 기초적 평화이해를 전제하고서 선포한 미가의 그 첫 번째 평화이념은 “평화란 민족간의 분쟁이 종식되고 전쟁의 도구가 평화의 도구로 바뀌어질 때 비로소 정착된다”라는 이른바 정치, 군사적 차원의 평화사상이다.
- 미 4:3 “그가 많은 민족 중에 심판하시며 먼 곳 강한 이방을 판결하시리니 무리가 그 칼을 쳐서 보습을 만들고 창을 쳐서 낫을 만들 것이며 이 나라와 저 나라가 다시는 칼을 들고 서로 치지 아니하며 다시는 전쟁을 연습하지 아니하고”
- “하나님께서 민족과 민족 사이의 분쟁을 판가름 해 주신다” - 평화의 기초이다. 하나님은 물리적인 힘으로 분쟁을 판가름하는 것이 아니라, 시온의 말씀과 가르침으로 판가름한다.
- “그리되면, 나라마다 칼을 쳐서 보습을 만들고 창을 쳐서 낫을 만든다” - 나라들은 하나님의 판가름으로 인해 무기를 버리고, 평화의 도구를 만든다. 이는 자발적이다. 무력으로 인해 무기를 버리게 하지 않는다. 미국은 무력으로 이라크를 무장해제 시켰다. 저항이 있다. 진정한 평화가 아니다. 진정한 평화는 자발적으로 무기를 버리고 평화의 도구를 취하는 것이다. 이는 야훼의 완전한 승리를 전제로 한다. 야훼의 미완의 승리는 나라들을 불안하게 하여 무기를 버리지 못하게 한다. 야훼의 말씀이 완전한 승리를 거둠으로 인해 나라들이 무기를 버리는 것이다.
- “나라와 나라 사이에 칼을 빼어드는 일이 없을 것이며, 그로 인해 군사훈련이 없어질 것이다” - 이는 창과 칼만이 안보를 보장한다는 거짓평화사상이 깨어짐을 의미한다. 사람들은 강력한 군사력이 나라의 안보를 보장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말일에 시온에서 흘러나오는 야훼의 말씀에 의한 통치가 이루어지면 그것은 거짓이라는 것이 백일하에 드러나게 된다. 참 평화는 강력한 군사력에서 나오는 것이 아님을 알게 된다. 그래서 군사훈련이 필요치 않다. 다만 생산과 생명을 위한 일이 필요할 뿐이다.
- 1-3. 본론 2) 사회.경제적 차원의 평화사상 (4)
- 이러한 ‘미가’의 정치 군사적 평화사상은 즉시 사회.경제적 차원의 평화사상으로 연결된다.
- 미 4:4 “각 사람이 자기 포도나무 아래와 자기 무화과나무 아래 앉을 것이라 그들을 두렵게 할 자가 없으리니 이는 만군의 여호와의 입이 이같이 말씀하셨음이니라”
- 일을 한 자가 그 일 한 바의 결과를 외부로부터 어떠한 위협도 받지 않고 만족스럽게 향유할 수 있는 사회가 곧 평화사회라고 하는 천명이다.
- 평화란 자기가 가꾼 포도나무와 무화과나무 아래서 아무런 두려움 없이 앉아 쉬는 것이다.
- 지혜의 왕 ‘솔로몬’ 때에 그와 유사한 평화가 존재했었다.
- 왕상 4:25 “솔로몬의 사는 동안에 유다와 이스라엘이 단에서부터 브엘세바에 이르기까지 각기 포도나무 아래와 무화과나무 아래서 안연히 살았더라”
- “다윗의 승리” 위에 세워진 솔로몬 왕국이었다. 그리고 “하나님께 지혜를 구했던” 솔로몬 왕국이었다. 솔로몬 왕국은 죄악과 징벌로 물든 이스라엘 역사에서 마치 오아시스를 연상케 하는 시대였다. 그 때에 평화가 있었다. 그것은 두려움 없이 자신의 수고의 대가를 누리는 것이다.
- ‘세례 요한’은 종말론적 평화에 대하여 메시지를 전했다.
- 눅 3:10-14 “10.무리가 물어 가로되 그러하면 우리가 무엇을 하리이까 11.대답하여 가로되 옷 두 벌 있는 자는 옷 없는 자에게 나눠 줄 것이요 먹을 것이 있는 자도 그렇게 할 것이니라 하고 12.세리들도 세례를 받고자 하여 와서 가로되 선생이여 우리는 무엇을 하리이까 하매 13.가로되 정한 세 외에는 늑징치 말라 하고 14.군병들도 물어 가로되 우리는 무엇을 하리이까 하매 가로되 사람에게 강포하지 말며 무소하지 말고 받는 요를 족한 줄로 알라 하니라”
- 하나님의 나라를 선포하며, 회개를 촉구하는 세례요한은 하나님의 나라, 즉 평화의 나라를 소망하는 자들에게 그들이 해야할 일을 가르친다.
- “가진 것을 골고루 평등하게 나누어라” (11) - 평화의 공동체에서는 필수적인 일이다.
- “정한 세금 외에는 늑징치 말라”(13) - 정직으로 일하라는 의미. 평화공동체에서 정직은 필수
- “정한 봉급에 만족하라”(14) - 요즘 육군에서 인사로 인한 뇌물이 관행이 된 것을 보도하고 있다. 하나님의 나라에서는 장군 봉급에 만족한다. 그래야 평화의 나라이다. 나의 분깃에 만족하지 않으면 빼앗는다. 빼앗기 위해 권력을 사용하기도 하고, 술수를 사용하기도 한다. 그것은 평화와 거리가 멀다.
- ‘미가’가 말하는 사회.경제적 차원의 평화는 자기의 땀의 대가를 두려움 없이 마음껏 누리는 것이며, 또한 그것에 만족하는 것이다.
- 1-4. 본론 3) 종교적 차원의 평화사상 (5a)
- 인간은 비록 정치.군사적 및 사회.경제적 안정을 획득하였다 하더라도 신앙적 정신적 차원의 안정이 없으면 참다운 “샬롬”을 맛볼 수 없다. 이것이 ‘미가’의 평화 사상이다.
- 돈도 많고 권력도 있어서 남부러울 것이 없는 사람이 정신치료를 많이 받는다. 왜냐하면 공허하기 때문이다. 허무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진정한 평화가 아니다. 진정한 평화는 정신적 안정까지 포함되어야 한다.
- 미 4:5 “만민이 각각 자기의 신의 이름을 빙자하여 행하되 오직 우리는 우리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빙자하여 영원히 행하리로다”
- ‘미가’가 말하는 진정한 평화는 종교의 자유가 주어질 때 완성을 이룬다고 할 수 있다.
- “만민이 자기 신의 이름을 부른다” - 종교적으로 강요를 받지 않는다. 이것이 진정한 평화이다.
- 종교를 강요받는 아랍권을 보라, 그 곳에서는 오직 이슬람교만 강요받는다. 타종교를 가지면, 사회에서 소외 받는다. 그러한 강요된 종교 속에서는 진정한 평화가 없다. 그래서 미가는 종교의 자유가 보장되는 것을 평화의 완성이라고 말한다. 강요된 신앙은 결코 평화를 누리지 못한다. 믿음을 강요받고 교회를 다니는 자는 주님을 만나지 못함으로 인해 참된 평화를 누리지 못한다.
- 1-5. 결론 : 회중의 응답 (5)
- 서론에서는 평화는 오직 하나님에게서 나온다고 했다. 그런데 종교의 자유가 보장되어 이방신을 부르는 것이 평화라고 말한다면 모순이 아니겠는가? 그렇지 않다. 모든 사람들에게 종교의 지유가 주어진다. 그런데 마지막 5절을 읽어보면, 미가의 평화사상 중, 그 평화가 어떻게 오는지 분명히 알게 된다,
- 5절은 종교적 차원의 평화가 무엇인지를 말하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회중들의 응답을 기록한 것으로써 본문의 결론이기도 하다.
- 미 4:5 “만민이 각각 자기의 신의 이름을 빙자하여 행하되 오직 우리는 우리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빙자하여 영원히 행하리로다”
- 미가의 평화 선포에 대하여 회중들은 응답하기를 만민은 각각 자기들의 신을 찾으며, 그 신에게 평화를 구한다 할지라도 우리는 즉 시온의 백성은 오직 하나님의 이름만을 부르리라고 응답한다.
- 이것은 ‘미가’의 선포를 듣는 백성들이 미가의 메시지를 정확하게 이해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즉 ‘미가’는 평화는 오직 시온에서 나오는 야훼의 율법과 가르침으로 말미암는다고 선포하였고, 그 선포를 받아들인 백성들은 그 선포를 분명히 이해하여 그 선포와 어울리는 응답을 한다.
- 즉 미가는 만 백성들에게 자발적인 신앙을 말하는 것이다. 여호와를 섬기는 것이 참된 평화이다. 그러나 그것은 강요에 의해서 되는 것이 아니며, 자발적인 응답에 의해 되어지는 것임을 말한다.
- 예를 들자!. 남미의 기독교 역사를 보라, 스페인은 남미를 점령했다. 명분은 선교였다. 수많은 사람들을 죽였고, 수많은 금은보석을 강탈했다. 스페인이 남미를 점령하던 시기 유럽의 금값이 그 전에 비해 1/3로 폭락했다고 한다. 이는 얼마나 많은 강탈이 이루어졌는지를 말한다. 스페인은 페루의 왕을 처형한다. 조건이 있다.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총살이고, 믿지 않으면 화형이다”라고 한다. 지금 페루 등의 남미 국가는 카톨릭 국가이다. 그러나 남미의 백성들은 하나님을 믿지 않는다. 즉 신앙으로써의 하나님이 아니라, 강요받은 종교로써의 하나님이기 때문이다.
- 요약 :
- 오늘은 ‘미가’의 평화 사상만을 공부하였다.
- ‘미가’가 말하는 평화는 정치.군사.사회.경제 및 종교적 평화이다.
- 그리고 ‘미가’는 이 평화는 오직 시온 즉 하나님의 말씀과, 가르침에서 말미암는다고 말한다.
- 그리고 평화를 누리는 백성은 자발적인 응답을 한다고 한다.
출처 : 임금택 창고
글쓴이 : 임금택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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