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명사들의 유언(遺言)
논어에 “새가 죽으면 그 울음이 슬프고 사람이 죽으면 그 말이 착하다” 하였다
鳥之將死其鳴也哀人之將死其言也善
사람들은 마지막 숨을 거둘 때 유언을 남긴다.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한 생을 마감하고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먼 길을 떠남에 어찌 남길 말이 없겠는가.
명사들의 유언을 수집해본다.
* 장자(莊子)(?~BC327)의 유언
장자의 병이 위독하게 되었다. 제자들은 임조의 자리에 모여 성대한 장례를 치르기로 의견을 모았다.
그러나 장자는 고개를 저었다. “하늘과 땅이 나의 널이요, 해와 달과 별은 영전(靈前) 의 공물(供物)이요, 만물은 모두가 조객(早客)인데 그 밖에 더 무엇을 할게 있겠는가, 내가 죽거든 나의 유해는 산야에 그대로 버리도록 하여라” 하였다.
그러나 제자들은 “그렇게 하면 선생님의 몸뚱이는 까마귀와 솔개의 밥이 될 것입니다”하면서 따르려 하지 않았다.
장자는 다시 말을 이었다. “땅위에 놓아두면 까마귀밥이 될 것이요, 땅속에 묻히면 벌래의 밥이 될 것이어늘 어찌 그들의 밥을 빼앗어야 되겠는가” 세속을 초월한 도인으로서의 마지막 유언이었다.
*알렉산더대왕(BC356~BC323)의 유언
알렉산더 대왕은 임종을 앞두고 “내가 죽거든 손을 밖에 내놓아 남들이 볼 수 있도록 해 달라”는 유언을 남겼다고한다. 그리스에서 인도에 이르기까지 대제국을 건설한 대왕치고는 너무 소박한 것이었다.
그는 “천하를 쥐었던 알렉산더도 떠날 때는 빈손으로 간다는 것을 보여주고자 하는 것 뿐”이라고 했다.
세계를 평정한 위대한 힘을 가진 대왕도 모기 한 마리에 물려 말라리아에 걸려 죽었다.
그런 알렉산더가 2400여년 만에 호사를 누리게 될지도 모르겠다고 한다.
그의 출생지에 인접한 그리스 북부 마케토니아 케르딜리온산의 절벽을 깍아 73m를 넘는 대형 얼굴조각상을 2002년 11월부터 그리스계 미국인들이 중심이 된 “알렉산더대왕재단”이 추진하고 있는데 그리스정부와 역사학자, 환경보호단체들의 반대에 부딪치고 있다.
고대 그리스 최대 건물인 전쟁의 여신 아테네상(像)도 12M밖에 안되는데, 70M를 넘는 얼굴조각상은 “그리스적이지 않다”는 주장이다.
* 등영초(鄧潁超)(1904.2.4~1992.7.11)의 유언
주은래 중국수상의 미망인으서 중국의 대표적인 여성정치지도자이다.
전국민주여성연합회 부주석과 명예주석, 전국인민대표회의 상무위원회 부위원장을 역임하였다.
가 마지막 가는 길이 너무도 감동적이어서 적어본다.
88세로 숨을 거둔 그는 당 중앙에 남긴 유언을 통해 “내가 죽으면 일체의 추모행사를 하지 말고 유해는 의학용으로 해부한 뒤 화장하여 중국의 산하에 뿌려 줄 것. 자신의 남편이 함께 살던 집은 절대로 기념관 따위로 만들지 말며, 국가소유인 이 집이 전 인민을 위한 용도로 쓰여야하며 자신과 남편의 친척들에게 어떤 특혜도 주어서는 안된다” 고 요청했다.
15세의 어린 나이로 중국의 혁명에 뛰어들어 일생을 나라위해 헌신했던 그의 유해 는 유언대로 한줌의 재로 천진앞바다에 뿌려졌는데 국가지도지들과 수많은 인민들이 눈물을 흘리며 운구행렬을 지켜보았다
* 이승만(1875.3.26~1965.7.19)대통령의 유언
1948.7 대한민국 건국 초대대통령으로서 1960.4 제3대까지 대통령을 역임하다가 4.19혁명에 의거 하야한 후 1960.5.29에 하와이로 망명하여 1965.7.19 호노룰루 요양원에서 별세 하였다.
그의 기도와 유언을 강원도 화진포에 있는 기념관에서 찾아볼 수 있다.
“······이제 저의 천명이 다하여 감에 아버지께서 저에게 주셨던 사명을 다하지 못하겠나이다. 몸과 마음이 너무 늙어버렸습니다. 바라옵건데, 우리민족의 앞날에 주님의 은총과 축복이 함께 하시옵소서.우리 민족을 오직 주님께 맡끼고 가겠습니다. 우리민족이 굳세게 서서 국방에서나 경제에서나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않게 하옵소서“
우리민족을 위한 축복의 기도는 파란만장한 생을 마치는 순간까지 멈추지 않았다.
“잃었던 나라의 독립을 다시 찾는 일이 얼마나 어렵고 힘들었는지 우리 국민은 알아야하며 불행했던 과거사를 거울삼아 다시는 어떤 종류의 것이든 노예의 멍에를 메지 않도록 하여야 한다. 이것이 내가 우리민족에게 주는 유언이다.“ 며 아들 이인수씨를 통해 우리 국민에게 유언을 남겼다.
1965,7.23 이승만박사는 꿈에도 잊지 못했던 그의 조국 자신이 평생토록 사랑하고 또 사랑했던 동포 곁으로 마침내 돌아왔다. 이로써 “무슨 일이 있어도 자신의 뻐를 한국땅에 뭍히개 해달라” 던 남편과의 마지 막 약속을 아내 프란체스카는 지킬 수가 있었다.
유해 운구가 되고 이화장에 빈소가 마련되자 전국에서 추모객이 몰려와 그 인파를 감당치 못한 이화장 입구 길목의 담장이 무너졌다. 병상에서도 “남북통일이 이루어지기 전에는 누을 감을 수가 없어” 하던 건국대통령 이승만, 그를 애도하는 추모인의 물결이 이화장 담을 무너뜨리듯 조국의 남북을 가로막은 휴전선의 담장도 자유를 갈망하는 인민의 힘 앞에 무너져 자유민주통일의 소원이 어서 이루어지기를 하늘나라에서 기다릴 것이다.
* 석가모니(BC565~BC485)의 유언
불교를 창시한 인도의 성자로 성은 고타마(Gautama : 瞿曇) 이름은 싯다르타 (Siddhartha:悉達多 )이다. 인도의 히라티
근처의 “쿠시나가라”라는 마을교외 말라족의 영토에 속하는 싸라상수의 숲에서 병들어 영면하게 된다.
많은 비구들이 스승을 걱정하여 병상주위에 모여 들었다.
부처님이 그들을 돌아보며 입을 열었다.
“비구들이여, 혹시 그대들 가운데 아직도 교법(敎法)승가(僧伽),그리고 실천의 방법에 대해서 의문을 가진 자가 있을지 모르겠다. 만일 그렇다면 훗날 스승 앞에서 질문을 못했다고 후회하는 일이 없도록 지금 묻도록 하라.“
그러나 비구들은 죽음을 앞에 둔 스승 앞에서 질문을 못하자, 부처는 두 번 세 번 재촉했고,비구들은 침묵을 지켰다.
부처님이 말을 이어나갔다.
“그대들은 나를 존경하기 때문에 묻지 않으나 그래서는 안된다. 친구가 친구에게 묻는 듯한 기분으로 질문을 하여라.
그래도 모두 가만 있자, 시자(侍者)인 안난다가 말했다.
“세존(世尊)이시어, 매우 드문 일이겠지만 한명의 비구도 교법 승가 또는 실천의방법에 대해서 의심하는 자는 없다고 믿사옵니다.“
부처님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며 비구들을 돌아보고 말을 계속하였다.
“비구들이여, 그러면 내가 말하겠다. 이 세상의 모든 것은 다 괴법(壞法)이니라. 방탕하지 말고 정진 하여라. 이것이 나의 마지막 말이다.“ 그리고 눈을 감고 영원한 적막에 드셨다. 당시 나이는 80세였다.
부처님의 마지막 모습과 유언을 적은 이 글은 잡아함경(雜阿含經)에 들어있다.
* 공자(BC552~BC409)의 유언
유교의 시조로 떠받들어 지는 중국의 사상가이다. 노(노)나라 창평향 추읍(지금의 山東省 曲阜의 남동)에서 출생, 자는 중니(中尼), 이름은 구(丘), 공자의 자(子)는 존칭이다.
최고의 덕을 인(인)이라고 보았다. 인에 대한 공자의 대표적인 저서는 극기복례(克己復禮), 즉 자기 자신을 이기고 예(禮)에 따른 삶이 곧 인이라는 것이다.
그 수양을 위해 부보와 연장자를 공손하게 모시는 효제(효제)의 실천을 가르치고 이를 인(仁)으로 출발점을 삼았다.
어느 날 공자가 제자 자공에게 꿈 이야기를 했다.
하(夏)나라 사람들은 동쪽계단위에, 은(殷)나라사람들은 두 기둥 사이에, 주(周)나라사람들은 서쪽 계단위에 빈소를 차렸다. 내 시조는 은나라가 아니더냐.
어제 밤에 두 기둥 사이에 편안히 앉아있는 꿈을 꾸었다. 공자는 자신의 죽음을 예감하고 말 했다.
“나는 이제 아무말도 하지 않으련다.” 뜻밖의 말에 자공이 물었다.
“스승께서 아무 말씀도 안 하시면 저희가 어떻게 도를 이어 받아 전 하겠습니까 ”
그러자 공자가 말했다. “하늘이 무슨 말을 하던가. 사시가 운행되고 만물이 생장하지만, 하늘이 무슨 말을 하던가?“
공자는 말문을 닫았다. 그렇게 7일이 흘렀고 그리고 공자는 숨을 거두었다.
* 예수의 유언
예수의 마지막 한 마디에는 그 열쇠가 담겨져 있다.
옛 성인들이 대부분 자연스런 죽음을 맞이했지만 예수는 사형선고로 십자가에 못 밖혀 처형을 당했다.
2000여년 전 작열하는 태양과 육신의 고통속에서 예수의 생명은 꺼져갔고 그러다 죽은 직전에 그는 외쳤다.
“아버지, 제 영혼을 아버지 손에 맡깁니다.(누가복음23장46절)”
“이제 다 이루어 졌습니다(요한복음19장30절)”
이 말을 끝으로 예수는 숨을 거두었다. 바로 예수의 유언이다.
* 안중근(1879.9.2~1910.3.26)
대한제국의 교육가, 독립운동가, 대한의병참모중장이다. 본관은 순흥, 고려 명현 안향의 26대손이다.
1905년 조선을 사실상 일본의 속국으로 만든 제2차한일협약이 체결된 것에 저항해 독립운동에 투신한
그는 1909.10.26 청나라 길림성 하얼빈역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 사살했다.
어려서 아명은 안응칠(安應七)이며, 천주교 세례명은 성 토마스 였다.
그는 순국하기 전 “동포에게고함” “순국하기 직전에 남긴 유언” “어머님께 드린 유언” “아내에게 보내는 유언”이
있다.
동포에게 고함
내가 한국의 독립을 되찾고 동양의 평화를 지키기 위해 3년동안 해외에서 모진 고생을 하다가 마침내 그 목적을
이루지 못하고 이 곳에서 죽노라, 우리들 이 천만 형제자매는 각각 스스로 노력하여 학문에 힘쓰고 농업, 공업,
상업 등 실업을 일으켜, 나의 뜻을 이어 우리나라의 자유독립을 되찾으면 죽는자 남은 한이 없겠노라.
순국직전에 남긴 유언
내가 죽은 뒤에 나의 뼈를 하얼빈공원 곁에 묻어 두었다가 우리나라가 주권을 되찾거든 고국으로 옮겨다오.
나는 천국에 가서도 또한 우리나라의 독립을 위해 힘쓸 것이다. 너희들은 돌아가서 국민 된 의무를 다하며,
마음을 같이하고 힘을 합하여 큰 뜻을 이루도록 일러다오. 대한독립의 소리가 천국에 들려오면 나는 춤추며
만세를 부를 것이다.
* 네로황제(AD37.12.15=라티움 안티움~68.6.9=로마)
네로황제 어머니 아그리피나는 남편을 독살한 뒤, 삼촌인 클라우디우스황제의 아내가 되어 그를 후계자로 삼고 황제의 딸 옥타비아와 결혼시켰다. 황제가 죽자 네로를 황제로 선포하게 만들고 원로원으로 하여금 받아드리도록 하였다.
그는 로마제국 역사상 처음으로 17세도 채 안된 소년에게 절대 권력이 넘어갔다
집권초기에는AD59년까지 비밀재판,부패한 해방노예의 지배 등 나쁜 관례를 없애고 원로원에 많은 독립권을 허용하는 등 선정을 하였으나 곧 폭군으로 변했다.
로마가 불길에 휩쌓인 것을 보고 악기를 연주했다는 가설이 있지만, 이는 아닐 가능성이 높다. 어찌되었든 마침내 68년 반란이 일어나고 치욕적인 사형을 면하고자 자살을 택했다. 그의 마지막 말이다.
“내안의 위대한 예술가가 죽는 구나”
* 윈스턴 처칠(1874.11.30=옥스포드셔 블렌업궁~1965.1.24=런던)
처칠은 2차대전을 승리로 이끈 수상 이었을 뿐만 아니라 국제적 정치가이고 문필가였다.
그의 마지막 말은 기록되지 않았지만, 75번째 생일에 한 연설이 마지막 말 이라 할 수 있다.
“나는 나를 만드신 분과 만날 준비가 되어있다. 그 분이 나를 만나실 시련의 준비가 되 있느냐 없느냐는 전혀 상관없다.”
* 루이14세(1638.9.5=생제르 맹앙레~1715.9.1=베르사유)
루이14세는 죽기 전 5살의증손자(훗날 루이 15세)에게 말 핬다.
“왜 우느냐? 넌 내가 영원히 살 rjj라고 생각했니? 나는 죽는 게 훨씬 어렵다고 생각했어.“
* 조조(曺條)(155~220)
명나라때 장부집(張溥輯)이 쓴 삼조걸(三曺傑)에는 조조의 유언 3부를 수록하고 있다.
그 중 2부는 삼국지에 기록되어 있지만 1부는 빠져있다. 2부가 공식유언으로 볼 수 있다.
3부는 가족들에게 쓴 것으로 사적 문건이라 볼 수 있다.
조조는 중국 삼국시대 위나라의 정치가이자 군인이며 시인이다.
자는 맹덕(孟德), 묘호는 태조(太祖),시호는 무황제(武皇帝)이다. 후한이 힘을 잃어 가던 시기에 탁월한 재능으로
여러 제후들을 격파하고 중국대륙의 대부분을 통일하여 위나라의 기틀을 닦았다. 조조는 삼국지의 영웅들 가운데
패자(覇者)로 우뚝 솟은 초세지걸(超世之傑)이라는 평가와, 후한을 멸망시킨 난세의 간웅(奸雄) 이라는 상반된 평가를
받기도 한다. 권모술수에 능한 악인으로 저평가되기도 한다.
그는 낙양에서 병들어 죽었다. 그의 유언인즉.
“천하가 아직 안정되지 않았으니 옛법을 따를 수가 없다. 장례를 마치면 모두 상복을 벗어라. 장병들 중 변방을 지키는자들은 주둔지로 떠나지 말라. 각 관리는 각자 임무를 다하라. 평소에 입던 옷으로 염을 하고 금은진보를 같묻지 말라“
**자료출처 : 가종서적. 인터넷검색자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