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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12. 미가의 평화사상2

유승필 2009. 6. 12. 10:21
  • 제 12 강
  • 미가의 평화사상2 (미가 4:1-13)
  • 들어가는 말 : 미가의 평화사상
  • 4:1-2은 평화는 하나님이 창조하신다는 내용이었다. -
  • 평화는 상태적 개념의 것이 아니라, 관계적 개념의 것인데, 그것은 곧 하나님과의 관계를 통해서 얻는 것이라고 했다. 야훼는 평화를 창조하시되, 시온에서 창조하신다. 시온은 야훼의 말씀이 나오는 곳이다. 그러므로 야훼의 말씀이 곧 평화 실현의 유일한 길이다.
  • 4:3-5은 평화의 개념을 담은 내용이다. - ①정치 군사적 차원의 평화사상(3), 사②회 경제적 차원의 평화사상(4), ③종교적 차원의 평화사상(5)이 나타난다. 평화란 어느 한 조건만 충족될 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종합적으로 조화를 이룰 때 만들어진다. 즉 야훼께서 주시는 평화는 부분적 평화가 아니라, 종합적 평화이다.
  • 거듭 말하거니와 이 평화는 시온에서 흐르는 야훼의 말씀을 통해 이루어진다.
  • 세상의 권력이 평화를 주지 못한다. 미국은 2002년 9월의 테러사건으로 불안해한다. 이 불안을 해소하기 위해 테러와의 전쟁을 선포하고, 미국은 안정을 찾아간다. 그러나 미국의 미움을 받는 나라들은 모두 불안하다. 언제 미국의 공격을 받을지 모르기 때문이다. 이것은 진정한 평화가 아니다. 평화는 어느 나라에 의해서 이루어지지 않는다. 야훼의 말씀을 통해 이루어진다. 모든 백성이 야훼의 말씀을 경외하고, 순종할 때 얻게 된다. 모든 백성이 “야훼의 말씀”의 통치를 받을 때, 얻게 되는 야훼의 선물이다. ‘미가’는 그 때에 대하여 말하길 “말일에”라고 한다.
  • 몸말2 : 평화실현의 모범적 예(例) (4:6-8)
  • 야훼 하나님에 의해 역사 안에서 실현될 평화현실의 한 모범적인 예는 6-8절에서 나타난다.
  • 󰏐��미 4:6-8 “6.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그 날에는 내가 저는 자를 모으며 쫓겨난 자와 내가 환난받게 한 자를 모아 7.그 저는 자로 남은 백성이 되게 하며 멀리 쫓겨났던 자로 강한 나라가 되게 하고 나 여호와가 시온 산에서 이제부터 영원까지 그들을 치리하리라 하셨나니 8.너 양 떼의 망대요 딸 시온의 산이여 이전 권능 곧 딸 예루살렘의 나라가 네게로 돌아오리라”
  • “그 날에는” - 본문도 역시 종말론적 예언의 형식으로 시작한다. 재언 하거니와 평화는 하나님의 통치로 완성된다. 그래서 평화본문에서는 종말론적 예언형식이 거듭되고 있다.
  • ‘그 날에’ 이루어질 평화가 어떻게 실현될 것인지를 말하기 위해 3부류의 사람들을 도입시킨다.
  • 첫째 “저는 자”(ה󰘝��󰗝��󰙁��, 쫄레아) - “절름발이”를 말한다. 창세기 32:31에 의하면 ‘야곱’이 하나님과 씨름을 하다가 한방 맞은 결과 절름발이가 된다. 이는 하나님의 징계를 받았음을 의미한다. ‘미가’가 절름발이를 언급하는 것은 바로 ‘야곱’이 하나님의 징계를 받아 절름발이가 되었던 일을 상기하였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미가’는 하나님의 징계를 받은 그 절름발이 ‘야곱’이 ‘남은 자’가 되어 평화를 누리는 자로 말한다. 이러한 사상은 선지자 ‘스바냐’에게서도 보인다.
  • 󰏐��습 3:19 “그 때에 내가 너를 괴롭게 하는 자를 다 벌하고 저는 자를 구원하며 쫓겨난 자를 모으며 온 세상에서 수욕받는 자로 칭찬과 명성을 얻게 하리라”
  • ‘스바냐’도 종말에 하나님은 ‘저는 자’를 구원하신다고 한다. 하나님의 징계를 받은 자를 말한다.
  • 둘째 “쫓겨난 자”(ה󰖎��󰕇��󰗼��, 닛다하) - “흩어진 자”를 말한다. 누가 흩어졌는가? ‘앗수르’에게 멸망한 북왕조의 백성들이 세계 각처로 흩어졌다. 앗수르는 세계를 정복한 후, 민족 혼합정책을 시행하여 온통 혼혈인으로 만든다. 각 민족이 조국을 떠나게 한다. 민족적 결속을 막으려는 정책이다. 이로 인해 ‘앗수르’에 멸망한 북왕조의 백성들은 흩어진 자들이다. 이들도 역시 그들의 죄로 인해 하나님의 징계를 받아 흩어진 자들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흩어진 자들을 모으신다. 그리고 그들에게 강한 나라가 되게 하신다. 이는 안전과 평화를 보장하는 나라이다.
  • 셋째 “환난 받는 자”(י󰚕��󰘢��󰙟��, 레오티) - “비틀거리는 자”를 말한다. 이들도 역시 하나님의 징계를 받아 바벨론의 포로가 된 유다의 백성들이다.
  • 평화실현을 설명하기 위해 거명된 3부류의 사람들은 한결같이 하나님의 징계를 받은 자들이다. 그것도 자신들의 죄로 말미암아 징계를 받은 자들이다. 그런데 하나님은 자신이 징계하신 그들을 모아서 ‘남은 자’를 삼으시고, 강한 자가 되게 하며, 평화를 누리게 하신다.
  • 󰏐��히 12:8 “징계는 다 받는 것이거늘 너희에게 없으면 사생자요 참 아들이 아니니라”
  • 하나님의 징계가 없으면 사생아라고 했다. 징벌은 지금은 힘이 드나, 후에는 완전한 평화를 보장하기도 한다. 죄에 대한 징벌이 없다면, 그것은 아들이 아니다.
  • 어떻게 하나님의 징계를 받은 절름발이가 평화를 누릴 수 있는가? 하나님의 통치 때문이다.
  • 󰏐��미 4:7 “그 저는 자로 남은 백성이 되게 하며 멀리 쫓겨났던 자로 강한 나라가 되게 하고 나 여호와가 시온산에서 이제부터 영원까지 그들을 치리하리라 하셨나니”
  • 그들이 비록 하나님의 징계를 받아야할 죄인들이지만, 그래서 누구든지 조롱하고 유린한 자들이지만, 하나님의 통치를 받으니 평화를 누린다. 평화는 상태적 개념의 것이 아니라, 관계적 개념의 것이기 때문이다. 즉 하나님과 이스라엘이 통치자와 피통치자의 관계 안에 있으니 평화이다.
  • 이러한 평화의 개념은 신약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 󰏐��마 9:6 “그러나 인자가 세상에서 죄를 사하는 권세가 있는 줄을 너희로 알게 하려 하노라 하시고 중풍병자에게 말씀하시되 일어나 네 침상을 가지고 집으로 가라 하시니”
  • 중풍병자는 자신의 죄로 인해 중풍병자가 되었다. ‘야곱’으로 말하자면, ‘절름발이’가 된 것이다. 주님께서는 그의 죄를 사하여 주심으로 그 병을 치료하신다. 그리고 “자신의 침상을 들고”(즉, “자신이 과거에 죄인이었다는 사실을 명심하고”) 시온으로 돌아간다. 이스라엘이 예루살렘으로 회복될 때에 그들이 죄인됨을 뉘우치고 돌아오는 것과 같다. 그럼으로써 치유받고 평화를 누린다.
  • 눅14:15-24에는 “큰 잔치의 비유”가 있다. 이 비유에 따르면, 잔치에 참여하는 이들은 처음에는 건강한 사람들인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마침내 잔치에 참여하는 자들은 거렁뱅이와 병자들이다.
  • 󰏐��눅 14:21 “종이 돌아와 주인에게 그대로 고하니 이에 집주인이 노하여 그 종에게 이르되 빨리 시내의 거리와 골목으로 나가서 가난한 자들과 병신들과 소경들과 저는 자들을 데려오라 하니라”
  • 평화는 야훼 하나님의 창조물이다. 본문(4:6-8)은 그 평화가 실현되는 모범적인 예를 보여주었다. 이 예에 따르면, 평화는 하나님께서 주시되, 하나님의 징벌을 받아 참 아들임이 입증된 사람들, 용서받은 사람들에게 주시는 은혜이다. 그리고 그들은 ‘남은 자’라고 부른다. 하나님은 죄인들을 모아 ‘남은 자’를 삼으시고, 그들을 직접 통치하심으로써 평화를 누리게 하신다. 그런 의미에서 교회는 종말론적 입장에 서서 세상의 병든 자, 고통받는 자들에게 평화를 맛보게 하는 곳이다.
  • 몸말3 : 평화실현의 방법 (4:9-13)
  • 4:1-5이 평화에 대한 정의를 내린 본문이라면, 4:6-8은 하나님이 이루시는 평화실현의 예이고,
  • 4:9-13은 앞에서 살펴본 평화실현의 방법을 가장 모범적으로 제시하는 본문이다.
  • 평화실현의 방법을 제시하는 4:9-13은 두 개의 구원식탁으로 구성된다.
  • 첫째 구원신탁(4:9-10)은 잃었던 시온성이 그 “잃었던”을 오히려 그 시온성에게는 “구원으로 가는 길”이 될 것이라는 예언이고,
  • 둘째 구원신탁(4:11-13)은 원수의 나라들로부터 조소와 위협을 받고 있는 시온성이 그 “위협받고 있음”이 오히려 그 시온성에게는 감격의 “승리에로 이르는 통로”가 될 것이라는 예언이다.
  • 말하자면 절름발이, 흩어진 자들, 비틀거리는 자들이 힘의 논리로 점철된 거대한 폭력적 원수들의 역사 속에서 능히 “살아 남아” 돌연 그 얼굴을 크게 치켜들고 스스로 강대국이 되었음을 선포하는 특수한 양식을 취한다. 이로써 평화실현의 방법이란 전적으로 고난의 심판을 통하여 환희의 구원으로 이르는 과정을 통해서 이루어진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 ‘미가’는 이러한 평화실현의 방법을 석명하게 묘사하기 위해 독특한 문학적 수사를 구사한다.
  • 첫째, 동일한 성격의 구원신탁을 “반복”함으로써 그 뜻을 강조한다.
  • 둘째, 그 두 개의 구원신탁을 모두 “‘이제’는 이러이러 하니”와 “‘그러나’ 후에는 저러저러하다”이라는 형식의 수사적 틀 속에 집어넣음으로써 한편은 현재적 고난으로 인한 탄식을 강조하고 있으며, 다른 한편으로는 현재의 탄식이 미래의 구원의 확신으로 그 분위기가 “급전환” 될 것을 강조한다.
  • 첫 번째 구원신탁 (9-10)
  • 󰏐��미 4:9-10 “9.이제 네가 어찌하여 부르짖느냐 너희 중에 왕이 없어졌고 네 모사가 죽었으므로 네가 해산하는 여인처럼 고통함이냐 10.딸 시온이여 해산하는 여인처럼 애써 구로하여 낳을지어다 이제 네가 성읍에서 나가서 들에 거하며 또 바벨론까지 이르러 거기서 구원을 얻으리니 (그러나)여호와께서 거기서 너를 너의 원수들의 손에서 속량하여 내시리라”
  • [공동번역]미 4:9 “(이제)너희가 어찌하여 지금 아우성이냐? 왕이 없어졌느냐? 자문관들이 죽었느냐? 외 몸푸는 여인처럼 몸부림을 치느냐?”
  • [공동번역]미 4:10 “수도 시온아! 하기야 몸부림치며 신음해야지. 너희는 이제 정든 고장을 떠나 바빌론으로 끄려 가 허허벌판에서 살게 되었다. 그러나 야훼께서 너희를 거기서 살려 내리시리라. 원수의 손에서 건져 내시리라.”
  • “이제”라는 말로 시작되는 전반부의 탄식이 “그러나”로 시작하는 끝부분의 구원의 확신에 의해 그 분위기가 급전환되고 있다.
  • 두 번째 구원신탁 (11-13)
  • 󰏐��미 4:11-13 “11.이제 많은 이방이 모여서 너를 쳐 이르기를 시온이 더럽게 되며 그것을 우리 눈으로 바라보기를 원하노라 하거니와 12.(그러나)그들이 여호와의 뜻을 알지 못하며 그 모략을 깨닫지 못한 것이라 여호와께서 곡식단을 타작 마당에 모음같이 그들을 모으셨나니 13.딸 시온이여 일어나서 칠지어다 내가 네 뿔을 철 같게 하며 네 굽을 놋 같게 하리니 네가 여러 백성을 쳐서 깨뜨릴 것이라 내가 그들의 탈취물을 구별하여 여호와께 드리며 그들의 재물을 온 땅의 대주재께 돌리리라”
  • 여기서는 11절의 마지막 단어 “하거니와”라는 용어를 통해서 뒤에 오는 단어가 자연스럽게 “그러나”임을 확인할 수 있다. 그러므로 여기서도 첫 번째 구원신탁과 마찬가지로 “이제는 이러이러 하다. 그러나 장차는 저러저러 하리라”라는 급전환의 양상을 보이고 있다.
  • ‘미가’는 현재의 탄식이 미래에는 구원의 환희로 급전환 될 것임을 그리고 이러한 급전환은 하나님의 평화가 임하는 것임을 반복적으로 강조하여 말하고 있다.
  • 본문은 이러한 “반복”과 “급전환”의 구조 속에서 독특한 신학적 주제를 나타내고 있다. 첫째 “산모의 진통”(9절), 둘째 “광야와 타작마당”(10절, 12절), 셋째 “전리품”((13절)이 그것이다. 이 3가지의 주제는 평화실현의 방법을 설명하는 결정적 역할을 한다.
  • 1. 산모의 진통 (9)
  • “산모의 진통”에 관한 주제는 시온성이 외적의 군사적 위협에 직면했을 때 겪었던 그 고통의 경험을 묘사하는 주제이다. 여기서는 바벨론의 예루살렘 침공과 함락으로 인한 예루살렘 백성들의 고통을 묘사하는 주제이다. 그러나 이러한 은유적인 주제가 여기서 사용되고 있는 의미는 이러한 산모의 진통소리가 지금은 비록 고통의 절규이지만 그러나 미래의 희망적 새 시대에로 초청하는 소리로서 해석되고 있다는 점이다. 즉, 진통은 최고의 아픔을 표상하지만 그러나 그 아픔은 결코 파괴적인 아픔이 아니라 생산적이고도 창조성을 가진 아픔이라는 것이다.
  • 재언 하자면, 시온이 지금 겪는 이 고난은 어디까지나 진통의 고난이기 때문에 조만간 새로운 생명이 자궁을 헤치고 나오게 될 것이라는 것이다. 이것이 하나님의 평화창조의 결정적 과정이요. 방법이라는 이라는 것이다.
  • 이 주제는 부활의 영광을 출산하려고 진통을 경험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사건에 대한 해석까지도 확대할 수 있는 주제이다. 하나님은 우리가 우리의 죄로 인해 겪고 있는 이 세상의 고난을 생산적 성격을 지닌 진통의 아픔으로 역사하신다. 하나님은 우리의 이 세상에서의 진통을 통해 출산의 기쁨을 주신다. 하나님의 구속의 섭리가 여기에 있다. 하나님은 평화를 창조하시되 독특한 방법으로 창조하신다. 죽을 죄인을 죽이지 않고, 그 죽음을 고통을 견디게 하셔서 결국 평화를 누리게 하신다.
  • 2. 광야와 타작마당 (10, 12)
  • 여기서 “광야”(10) 주제가 나오는 것은 출애굽을 연상케 한다. 즉 이스라엘은 베벨론으로부터의 귀환을 제 2의 출애굽으로 이해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광야”는 고통받고 수모를 당하는 장소이면서 동시에 그곳은 야훼 하나님께서 시온을 구원하실 구원의 장소로서 사용되었다고 역설한다.
  • 󰏐��미 4:10 “딸 시온이여 해산하는 여인처럼 애써 구로하여 낳을지어다 이제 네가 성읍에서 나가서 들에 거하며 또 바벨론까지 이르러 거기서 구원을 얻으리니 여호와께서 거기서 너를 너의 원수들의 손에서 속량하여 내시리라”
  • “광야”를 지칭하는 “거기서”라는 단어가 두 번이나 반복됨으로써 “광야”가 구원의 장소임을 강조한다. 이러한 사상은 ‘호세아’의 사상과 일치한다.
  • 󰏐��호 2:14-15 “14.그러므로 내가 저를 개유하여 거친 들로 데리고 가서 말로 위로하고 15.거기서 비로소 저의 포도원을 저에게 주고 아골 골짜기로 소망의 문을 삼아 주리니 저가 거기서 응대하기를 어렸을 때와 애굽 땅에서 올라오던 날과 같이 하리라”
  • ‘호세아’의 사상에 따르면 이스라엘을 광야로 유인하신 야훼 하나님의 뜻은 이스라엘을 고난의 광야에서 징치하고 훈련시켜서 죄가 철저히 도말되어 정화된 참 이스라엘을 재창조하시려하는 사상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미가’도 또한 시온을 재창조하시는 야훼 하나님이 광야의 고난이나 타작마당의 고난을 통해 죄를 도말하시고 정결한 시온을 재창조하신다는 사상을 전한다. 이것이 야훼 하나님의 평화 창조의 방법이다.
  • 3. 전리품 (13)
  • 이와같은 평화실현을 위한 야훼 하나님의 거룩한 전쟁은 하나님께서 전리품 봉헌을 받으심으로써 완결된다.
  • 전리품의 의미 : 전리품은 성별하여 신에게 바쳐진 성물임과 동시에, 저주를 받아 추방된 것이라는 이중적 의미가 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거룩한 전쟁에서 승리하였을 때, 전리품을 하나님께 드린다. 이는 성물을 의미한다. 그러나 그렇게 하나님께 드리는 또 다른 이유는 그 전리품은 부정한 것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이 가나안을 점령할 때, 가나안의 모든 것을 진멸하라고 하셨다. 그것들은 부정하기 때문이다. 그것들은 이스라엘을 오염시킬 것이기 때문이다. 그것들은 박멸해야할 야훼의 원수이기 때문이다. 박멸해야할 적그리스도이다.
  • ※과연 전리품이 박멸해야할 적그리스도인가?
  • 󰏐��창 9:22 “가나안의 아비 함이 그 아비의 하체를 보고 밖으로 나가서 두 형제에게 고하매”
  • 아버지를 조롱한 ‘함’에 대하여 그를 “‘가나안’의 아비”라고 한다. 다른 형제들은 자신의 이름만 거론되는 것과 비교된다. 이유가 있다. 지금 창세기를 듣고 있는 이스라엘은 광야에 있다. 가나안으로 가려고 한다. 그러니 그 가나안에 거하는 자들이 누구인지를 밝히고 있다.
  • 󰏐��창 9:25 “이에 가로되 가나안은 저주를 받아 그 형제의 종들의 종이 되기를 원하노라”
  • 술에서 깬 ‘노아’가 ‘함’의 죄악을 알고 저주를 하되 그의 아들 ‘가나안’을 저주한다. 이는 다시 시작된 세상에서 죄악이 어디서 출발하고 어디에서 확장되고 있는지를 말한다. 즉 ‘함’에서 시작된 죄악은 그의 후손인 ‘가나안 족속들’을 통해서 확장되고 있다.
  • 󰏐��창 10:15 “가나안은 장자 시돈과 헷을 낳고”
  • ‘가나안’의 족보이다. 18절까지 기록된 족속들은 가나안 후손들을 대표하는 족속들이다. 이들은 모두 가나안 땅을 차지하고 그 곳에서 악을 키우며 살아간다.
  • 󰏐��창 15:18 “그 날에 여호와께서 아브람으로 더불어 언약을 세워 가라사대 내가 이 땅을 애굽 강에서부터 그 큰 강 유브라데까지 네 자손에게 주노니”
  •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약속한 땅은 ‘가나안 족속들’이 사는 땅이다. 죄악의 소굴이다. 19절 이하는 가나안 족속을 열거하는데, 이는 그들이 ‘함’의 후손들임을 나타내고자 함이다.
  • 󰏐��창 15:16 “네 자손은 사 대 만에 이 땅으로 돌아오리니 이는 아모리 족속의 죄악이 아직 관영치 아니함이니라 하시더니”
  • ‘아모리’는 가나안을 대표하는 부족이다. 그들은 죄악으로 관영할 것이다. 그들은 ‘가나안’의 후손으로써 계속 죄를 확장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하나님은 그 죄악을 처단할 도구로 ‘셈의 후손’이며 ‘아브라함의 후손’을 세우신다.
  • 그러므로 이스라엘과 가나안의 전투는 영적 전투이다. 거룩한 전투이다. 그 전리품은 모두 사악한 것이다. 그래서 그것을 모두 하나님 앞에서 전소해야 한다. 적그리스도를 박멸했음을 보고하는 것이다. 그리고 ‘미가’는 그 전리품을 야훼 하나님께서 평화를 창조하시는 방법으로 제시한다. 적그리스도는 반평화적 요소이기 때문이다.
  • 맺음말 :
  • 평화는 상태적 개념의 것이 아니라, 관계적 개념의 것이다. // 평화는 하나님의 창조물이다.
  • 그러므로 하나님의 통치를 받음으로써 진정한 평화를 누리게 된다.
  • 하나님은 거룩한 전쟁을 통해 반평화적 요소들을 박멸하신다. 하나님은 그 거룩한 전쟁의 현장에 ‘저는 자’(남은 자)를 내 보내신다. 저는 자는 고난을 받는다. 해산하는 여인처럼 광야의 아픔처럼 그러나 승리하여 평화를 얻는다. 그 전쟁은 하나님이 함께 하는 거룩한 전쟁이기 때문이다.
  • 이를 통하여 볼 때, 평화는 가만히 앉아 있는 자에게 찾아오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순적하게 받아들이고, 순종하기를 전투를 치르는 것처럼 순종하는 자에게 주시는 선물이다.
출처 : 임금택 창고
글쓴이 : 임금택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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