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 3 강
- 미가 이전의 ‘남은 자’ 사상 (엘리야의 사역)
- Ⅰ 이스라엘의 역대 왕조
- 제 1 왕조 : 여로보암 → 나답
- 제 2 왕조 : 바아사 → 엘라
- 제 3 왕조 : 시므리 (7일천하)
- ‘시므리’는 반란을 일으켜 ‘엘라’를 죽이고 왕이 된다.
- 이 때에는 이스라엘이 ‘깁브돈’ 블레셋과 대치 중이었으며 지휘관은 ‘오므리’였다.
- ‘깁브돈’의 군사들은 반란 소식을 듣고, ‘오므리’를 왕으로 추대한다.
- 수도 ‘디르사’로 돌아가 포위하고 왕궁을 불태우고 ‘시므리’를 죽이고 통일한다.
- 이로써 제 4조 오므리 왕조가 탄생한다.
- 제 4 왕조 : 오므리 → 아합
- ‘오므리’ (B.C 877-869)
- 1. 뛰어난 정치가이며 외교가였다.
- ‘디르사’에서 6년을 치리하다가 도읍을 ‘사마리아’로 옮긴다. (왕상16:24)
- ‘모압’을 정벌하여 국토를 넓히고, 나라를 강하게 하였다.
- ‘페니키아’와 우호조약을 맺음으로 국제무역을 활발하게 하여 나라를 부자로 만들었다.
- ‘두로’와 동맹을 맺음으로 급속히 커지고 있는 ‘수리아’의 패권을 견제하였다.
- 2. 종교적으로 실패한 왕이다.
- ‘가나안’과의 동화정책은 이스라엘의 고유 신앙인 야훼신앙을 양보하는 것이다. 가나안 신전을 사마리아에 건설해야만 했다.
- ‘밷엘’과 단에 있던 성소를 사마리아로 옮겨, ‘여로보암’이 만들었던 금송아지를 옮겼다.
- ‘오므리’ 정치 외교적으로는 성공한 왕이었으나, 그 성공의 뒤에는 신앙의 포기가 있었다. 그는 눈 앞에 보이는 이익을 따라 하나님을 버린 왕이었다.
- 아합 (B.C 869-850)
- ‘오므리’의 아들로써 왕이 된 ‘아합’은 ‘오므리’의 정책을 그대로 계승하였다.
- ‘시돈’의 왕 ‘엣바알’의 딸인 ‘이세벨’과 결혼한다.
- ‘이세벨’과 함께 들어온 ‘바알’을 섬기기 위해 ‘바알신전’을 건설한다.
- ‘가나안’과 ‘이스라엘’의 동화정책을 국론을 일치시켰다.
- 건축이 활발하다는 것은 나라의 경기가 좋다는 이야기이다. 당시 건축 붐이 일었다.
- 왕상 16:34 “그 시대에 벧엘 사람 히엘이 여리고를 건축하였는데 저가 그 터를 쌓을 때에 맏아들 아비람을 잃었고 그 문을 세울 때에 말째 아들 스굽을 잃었으니 여호와께서 눈의 아들 여호수아로 하신 말씀과 같이 되었더라”
- 아들을 잃으면서도 건축을 멈추지 않았다. 대단한 건축 붐이 일었으며, 이는 경제력이 뒷받침되었다는 이야기이다.
- 그러니 나라는 점점 안정 속에서 부강하여지고, 아합의 인기는 대단하였다.
- 그러나 그의 종교관은 혼합주의였다. 아무 신이나 자기를 이롭게 하는 신을 섬기면 된다는 식이다.
- “‘바알’도 하나님이고, ‘아세라’도 하나님이고, ‘여호와’도 하나님 중의 하나이다”. 이것이 ‘아합’의 종교관이었다.
- 불교, 천주교, 원불교의 여(女) 성직자들이 서로의 신을 찬미하는 성가대회를 열었다. 에큐메니컬 운동의 일원이다. 아름다워 보인다. 평화로워 보인다. 그러나 그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니다.
- ex) 유일한 구원자 예수 그리스도
- 하나님은 오직 자신만 섬길 것을 요구한다. 왜인가? 하나님만이 유일한 구원자이시기 때문이다. 이스라엘을 구원하신 분은 오직 하나님뿐이시고, 앞으로 인도하실 분도 하나님뿐이시기 때문이다.
- 사 12:2-3 “2.보라 하나님은 나의 구원이시라 내가 의뢰하고 두려움이 없으리니 주 여호와는 나의 힘이시며 나의 노래시며 나의 구원이심이라 3.그러므로 너희가 기쁨으로 구원의 우물들에서 물을 길으리로다”
- “하나님만이 유일한 구원자이시기 때문에 오직 하나님의 우물에서만 물을 구한다”는 고백을 이스라엘은 보존해야만 했다. 그리고 그 고백을 오늘의 성도들도 보존해야 한다.
- 요 14:6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 행 4:12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니라 하였더라”
- 주님의 구원하심은 참으로 눈물겹다.
- 우리는 모두 하나님의 아들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죄인이다. 보통 죄인이 아니라, 사형선고를 받을 죄인이다. 그리고 하나님은 그러한 우리를 심판하셔야할 심판자이시다. 어떻게 심판하시는가? 모두 용서해 주시는가? 그렇다면 하나님의 “공의”는 실종되는 것이 아닌가? 하나님은 재판관복을 입으시고 우리를 심판하신다. 그리고 사형감이 분명하기에 사랑하는 아들에게 사형선고를 내리신다. 그리고 우리를 죽게 내버려두시는가? 그렇지 않다. 하나님은 재판장의 옷을 벗고, 죄인의 자리로 내려 오셨다. 그리고 아들이 입고 있는 죄수복을 벗기고 대신 그 옷을 입고, 스스로 사형수가 되신다. 이 분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시다. 예수님은 높고 높은 보좌에 앉으셨으나, 낮고 천한 인간의 몸을 입으시고, 우리를 대신하여 사형선고를 받으셨다.
- 그런데 우리가 어찌 ‘바알’과 ‘아세라’를 겸하여 섬기겠는가? 그런데 ‘오므리’와 ‘아합’은 이스라엘을 그렇게 인도하였고, 이스라엘은 나라가 부강하여지고, 삶이 풍요로워지니 ‘아합’을 지지하고 따른다.
- 이 때, “아닙니다. 우리의 하나님은 오직 여호와뿐입니다”라고 외친 사람이 있었다. 그가 ‘엘리야’이다. 신학도는 그런 의미에서 엘리야적인 사역을 감당하는 사람들이다. 지금은 ‘아합’의 시대처럼 모든 것에서 풍요롭다. 실직자도 많고, 경제는 어렵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풍요롭다. 그런 때에 사람들은 “좋은게 좋은거”라는 생각으로 하나님을 멀리하고 우상을 허용한다.
- 이제 엘리야의 사역을 통해 우리의 사역의 길을 배우자
- Ⅱ 엘리야의 사역
- “엘리야” - “나의 하나님은 여호와시다”, “여호와가 나의 하나님이시다”라는 뜻이다. 시대에 알맞은 이름이다.
- 엘리야는 모든 면에서 풍요를 누리는 ‘아합’의 시대에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이세벨’의 영향으로 온통 바알과 아세라를 섬기던 이스라엘을 행해 불을 던진 사람이다. ‘아합’에게 대항하여 여호와종교의 불씨를 지핀다. 이로 인해 종교 분쟁이 발생한다.
- 1. 흉년을 예언하고 핍박을 받는 ‘엘리야’
- 왕상 17:1 “길르앗에 우거하는 자 중에 디셉 사람 엘리야가 아합에게 고하되 나의 섬기는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의 사심을 가리켜 맹세하노니 내 말이 없으면 수년 동안 우로가 있지 아니하리라 하니라”
- 풍요의 기원은 하나님이다. 그런데 지금의 이스라엘은 ‘바알’의 은혜로 알고 산다.
- ‘바알’은 다산의 신이다. 풍요롭게 해주는 신이다. 그래서 이스라엘은 그 ‘바알’이 자신들을 풍요롭게 한다고 믿었다.
- 이에 ‘엘리야’는 “하나님께서 3년 동안 비를 내리지 않을 것”이라고 선포한다.
- 이는 하나님의 시기로 받아들여진다. “‘바알’과 잘 살고 있는데, 하나님이 끼어 들어 우리의 풍요를 막는다”고 생각한다.
- 이것이 우상의 특징이다. 우상은 하나님의 은혜를 자신이 준 선물로 바꾼다. 그것으로 사람을 유혹한다. 그래서 사람들로 하여금 선지자를 핍박하게 한다. 수많은 하나님의 종들을 학살한다. “여호와 종교”의 뿌리를 뽑고 “바알 종교”를 뿌리내리려한다.
- 결국 ‘엘리야’는 그릿 시냇가로 숨어서 까마귀가 주는 밥으로 먹고 연명한다. 그러나 얼마 되지 않아 가뭄은 ‘엘리야’까지도 살기 어렵게 만든다.
- ‘엘리야’는 시돈 땅의 사르밧으로 피하여 과부의 공계를 받으며 산다.
- 2. 갈멜산에서 바알 선자자들을 죽임
- 다시 이스라엘로 돌아온 ‘엘리야’는 ‘바알 선지자’와 ‘아세라 선지자’들 850인을 불러 갈멜산에서 영적 전쟁을 감행한다. 여호와 종교의 회복을 위해 하나님께서 본격적으로 나선 것이다.
- 바알 선지자들과 아세라 선지자들은 그 신을 부르지 못한다. 하늘에서 불을 내려달라고 애원을 하지만, 하나님이 개입하신 일이니 힘을 쓸 수 없다.
- 반면에 ‘엘리야’는 제물과 화목 위에 물을 붓는다. 훔뻑 적시고 기도하니 하늘에서 불이 내려와 제물을 불사른다. 모든 백성들이 여호와의 임재에 환호를 한다.
- 이 갈멜산 결투의 목적이 무엇인가?
- 왕상 18:37 “여호와여 내게 응답하옵소서 내게 응답하옵소서 이 백성으로 주 여호와는 하나님이신 것과 주는 저희의 마음으로 돌이키게 하시는 것을 알게 하옵소서 하매”
- “이 백성으로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의 하나님인 것을 알게 하소서”
- “여호와께서는 이스라엘이 돌이키길 원하고 계심을 알게 하소서”
- ‘엘리야’는 패배한 바알 선지자들과 아세라 선지자들을 기손 시내에서 처형한다.
- 마치 주님께서 다시 오셔서 땅에서 나온 짐승들과 바다에서 올라온 짐승들을 물리치고 그들을 무저갱 속으로 집어넣는 것과 같은 통쾌함이 있는 장면이다.
- 그러나 주님의 승리와는 다르다. 엘리야의 승리는 영원한 것이 아니었다. 한시적인 것이다. 그래서 곧바로 ‘이세벨’의 반격이 시작된다. ‘엘리야’를 죽이려고 한다. ‘엘리야’는 영적 승리를 거두고도 하는 수 없이 다시 도망하는 신세가 된다.
- Ⅲ 엘리야의 사역에 나타난 ‘남은 자’ 사상
- ‘엘리야’는 광야로 도망친다. 그리고 ‘광야’에서는 죽으려고 했다.
- 왕상 19:4 “스스로 광야로 들어가 하룻길쯤 행하고 한 로뎀나무 아래 앉아서 죽기를 구하여 가로되 여호와여 넉넉하오니 지금 내 생명을 취하 옵소서 나는 내 열조보다 낫지 못하니이다 하고”
- “나는 선배 선지자들보다 부족한 자라서 바알과 아세라를 물리칠 수 없습니다. 그러니 차라리 저를 데려 가십시오”
- 그러나 하나님은 그에게 떡과 물을 주신다. ‘엘리야’는 그것을 먹었으나 전의를 상실한 고로 다시 누워버린다. 그러자 하나님은 다시 먹을 것을 주며, 어루만져 위로하고 격려한다. 그러자 엘리야는 그 음식을 먹고 시내산으로 간다.
- 1. 시내산 굴속에서
- 시내산에 도착한 엘리야는 아직 영적 기력을 회복하지 못하고 굴속에 들어가 칩거한다.
- 하나님이 “네가 어찌하여 여기 있느냐?”(19:9)라고 물으시자 대답한다.
- 왕상 19:10 “저가 대답하되 내가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를 위하여 열심이 특심하오니 이는 이스라엘 자손이 주의 언약을 버리고 주의 단을 헐며 칼로 주의 선지자들을 죽였음이오며 오직 나만 남았거늘 저희가 내 생명을 찾아 취하려 하나이다”
- “나는 주님을 향한 사랑과 사역을 열심히 감당했습니다”
- “그런데 이스라엘은 주의 언약을 버렸고, 제사를 멈추었습니다”
- “나의 동료 선지자들은 모두 순교하고 말았습니다”
- “오직 나만 남았습니다”
- 여기서 ‘남은 자’ 사상이 나타난다.
- ①이스라엘이 언약과 제사를 버린 상황에서
- ②충성된 선지자들이 순교를 당하는 상황에서 ‘남은 자’가 나타난다.
- ※언약과 제사를 버리지 않고 핍박을 면한 ‘남은 자’로 나타난다.
- 2. 굴 밖에서 (세미한 음성 앞에서)
- 하나님은 ‘엘리야’를 굴 밖으로 인도하신다. 그리고 세미한 음성을 들려주신다. “네가 어찌하여 여기 있느냐?”(19:13). 그러자 ‘엘리야’가 답한다.
- 왕상 19:14 “저가 대답하되 내가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를 위하여 열심이 특심하오니 이는 이스라엘 자손이 주의 언약을 버리고 주의 단을 헐며 칼로 주의 선지자들을 죽였음이오며 오직 나만 남았거늘 저희가 내 생명을 찾아 취하려 하나이다”
- 다시 반복되는 대답이다. “오직 자신만 남았다”는 주장이 강조된다.
- 하나님께서 “왜 여기 있니?”라고 말씀하시는 것은 사명을 행할 자가 낙담하여 있는 상태를 안타까워 하시는 말씀이었고, 엘리야는 이에 대하여 “나 혼자 무엇을 할 수 있단 말입니까?”라고 대답한다.
- 3. 7000인의 ‘남은 자’
- 하나님은 엘리야가 해야할 일을 가르치신다.
- “하사엘에 기름을 부어 아람의 왕이 되게 하고”
- “예후에게 기름을 부어 이스라엘의 왕이 되게 하고” - 오므리 왕조를 무너뜨리시겠다는 말씀
- “엘리사에게 기름을 부어 선지자가 되게 하라”
- 그리고 결코 엘이야가 외롭지 않음을 말씀하신다.
- 왕상 19:18 “그러나 내가 이스라엘 가운데 칠천 인을 남기리니 다 무릎을 바알에게 꿇지 아니하고 다 그 입을 바알에게 맞추지 아니한 자니라”
- 하나님께서 자기만 혼자 남았다고 불평하는 ‘엘리야’에게 주신 대답은 이중적 성격을 지니고 있다.
- 첫째, 엘리야는 유일한 ‘남은 자’가 아니라는 것이다. 왜냐하면 YHWH에게 충실한 7,000명의 ‘남은 자’가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 둘째, 파괴적인 심판이 이스라엘의 변절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의 전멸을 초래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미래의 실체로서의 ‘남은 자’ 사상을 보여준다.
- Ⅳ 정리
- 환란과 핍박 속에서 ‘남은 자’가 출현한다.
- ‘남은 자’는 환란과 핍박 중에서도 ‘바알’에게 굴복하지 아니한 여호와께 충성된 자들이다.
- 현대는 보이지 않는 우상이 많은 시대이다. 오직 하나님께 충성된 종이 되라
출처 : 임금택 창고
글쓴이 : 임금택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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